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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에페소의 화려한 유적

화사랑 2011. 7. 28. 20:59

 

 
터키여행 하는 내내 강렬한 태양빛에 놀라
모자쓰고,썬글라스 착용하고,그것도 모자라 양산까지 바쳐 들어야
과감하게 나설수 있었습니다.
여행 6일차 오후에 터키 이즈밀 주 셀축에 위치한 에페소를 방문했습니다.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는 나무 한그루 찾아 보기 어려운 에페소의
유적지는 찬란했던 과거의 영화로움 만큼 태양이 이글거리는 곳이었습니다.
 


에페소 유적지 입구에 한국인들의 위상을 알수 있는 안내판이 한글로 써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친절한 서비스를 한것 이지만
외국에서 한글로 된 안내판을 보면 저절로 애국심이 불타 오르게 되더군요.
터키는 우리와 형제의 나라라고 할만큼 우호적인 나라이지요.
우리나라 유적지 못지 않게 한국인들이 많이 다녀간 곳이 에페소 인것 같았습니다.
 


 에페소 라는 곳은 B.C 2-6세기에 에게해의 대도시로 무역의 중심지 였으며

그리스 상인들로 활기를 띠던 도시 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작고 폐허같이 보이지만 교회 역사에서 에페소는 예수의 모친 성모 마리아와
제자 사도 요한과 관련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바울로 인해 복음이 왕성히 전해지는 에페소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A,D 53년 이곳에서 말씀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A,D 262년 몰락하여 그 화려한 시대는 점차 막을 내렸다고 합니다.
 

 에페소의 유적지를 돌아보며 과거의 영화로움과 기독교가 번성했던 도시의 면모를 읽었습니다.
지금은 폐허처럼 보여도 돌기둥 하나, 조각품 하나 하나 에서 그 당시의 예술적인 감각과
황금기를 보내던 옛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물씬 풍기는걸 느꼈습니다.
 

소 아시아 주의 수도이자 최대의 항구 도시였던 에페소엔 20만명이 거주했다고 하니
그 당시에 얼마나 번성하던 도시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터키의 땅 면적이 우리나라의 7-8배 되는 면적이라고 합니다.
터키 곳곳에 성지와 유적지가 분포되어 있는걸 보면 
땅이 넓어서 역사가 깊은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만큼 터키도 역사의 땅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에페소는 이즈밀로 부터 74km거리에 위치한 도시로서 바울로 시대만 해도 번창한 항구였으나

카이스트로스 강을 타고 흙이 씻겨 내려와 지금은 배가 드나들지 못하고
바다와 에페소 사이에는 큰 거리가 생겼다고 합니다.
에페소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입성으로 해방되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후 히라브이 장군이 Lysimachos 는 에페소에 경기장,체육관,원형극장을 세워
에페소를 크게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된 에페소는 소아시아 서부 지역의 수도가 되었고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정치적,경제적 번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88년 시민들이 로마의 압제에 항거하여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자
로마의 실라 장군은 에페소를 완전 초토화 시켰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부터 다시 재건된 이 도시는 아시아 속의 정치,상업,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에페소는 오스트리아 고고학자들의 노고로 발굴된 것이라고 합니다.
 
인류의 역사속에 묻혀 사라지고 말았을 유적지를 고고학자나 관심있는 사람들이 어렵게
발견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을 남겨주는 장소가 되도록 하였으니
그들의 노고에 남의 나라 유적지 일망정 감사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쿠레테스(제관들) 거리 입니다.
바실리카 끝에서 휘어진 길이 셀수스 도서관 까지는 직선으로 이어지는데
이 넓은 도로를 크레테스(제관들)거리라고 하며 돌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에페소의 시청건물 중앙에 있던 에페소의 성화(聖畵)를 지키는 제관들의 행렬이
지나던 길이라서 쿠레테스(제관들)의 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스콜라스티카 목욕탕 입니다.1세기에 세워진 3층 구조의 목욕탕이 지진으로 파괴 되었는데

4세기에 부유한 기독교인인 스콜라스티카에 의해 재건축 되었기에
그녀의 이름을 따서 스콜라스티카 목욕탕 이라고 합니다.
로마인들은 목욕을 좋아해서 곳곳에 커다란 목욕탕을 세웠으며
탈의실,열탕,냉탕에 체력단련 시설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인에게 목욕탕은 휴식장소이며,운동 장소이며 사교장 이었다고 합니다.
로마인들은 목욕탕에서도 토론을 즐겼다고 합니다.
로마시대 때의 목욕탕 문화가 오늘날 우리나라에 까지 전파된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로마시대의 목욕탕은 비잔틴 시대를 거쳐 발전하다가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또 다른 차원의 목욕문화를 낳게 되었는데
이게 바로 터키탕 이라고 합니다.
터키탕은 건식 목욕으로 열기를 가득 채운 욕실에서 땀을 낸후에 몸을 씻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터키탕 이라는 이름을 많이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건전한 목욕문화의 터키탕이 아니어서 터키 정부의 항의를 받고
터키탕 이라는 용어를 없앴다고 하지요.
에페소에 남겨진 스콜라스티카 목욕탕을 관람 하면서
 그 옛날에도 사람들이 위생시설에 투자를 많이 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어떤 장소일까요?
스콜라스티카 목욕탕과 하드리아누스 신전 사이에 있는 공중 화장실 입니다.

지극히 친환경적인 수세식 화장실 이었다고 합니다.
공중 화장실을 목욕탕 보다 낮은곳에 설치하여 목욕탕에서 사용한 물을 재활용하는
차원에서 화장실로 흘려 보내면 자동적으로 수세식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로마인들은 화장실에 앉아서도 옆사람과 토론을 즐겼다고 합니다.
변기 사이에 특별한 칸막이 시설이 없었다는데
치부를 드러내는 불상사는 없었다고 합니다.
로마인들이 입던 토가 라는 옷은 공중 화장실에 앉아서도
불편을 느끼지 않던 옷이었다고 합니다.
화장실 문화에 대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그 당시의 지혜로웠던 위생시설에 대해 감탄했습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 하는 장소로 탈바꿈 하여서
굳이 화장실 이었다고 이야기 하기전엔 무슨 용도였을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이었습니다. ㅎㅎㅎ
 


하드리아누스 신전 입니다.
도미티아누스 신전에 이어 에페소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황제를 위한 신전 입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스스로를 숭배하도록 강요해서 세워진 신전 이었으나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위한 신전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128 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에페소를 방문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38 년경 퀸틸리우스가 코린트 양식의 신전을 세우고  황제에게 봉헌한 신전 이라고 합니다.
138 년경에 만들어진 예술적인 조각품들이 오늘날의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감각이었던 같습니다.


이 건물은 셀수스 도서관 입니다.

에페소 유적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으로 손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은
에페소 유적 가운데 전면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화려한 모습을
상상하게 해주었습니다.
셀수스 도서관은 A,D 135 년 C,Aquila에 의해 아시아 지역의 통치자 였던
그의 아버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이 도서관에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상단은 지혜,운명,지식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성상들로 장식되어 있고,한때 12,000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던
대규모 도서관 이었다고 합니다.
건립 당시에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페르가몬 도서관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규모의 도서관 이었다고 합니다.
1,900년 전에 두루마리 장서를 12,000권 소장하고 있었다면
그 당시의 학구열이 얼마나 높았는지 상상이 됩니다.
 


셀수스 도서관은 셀수스의 무덤위에 세워 졌다고 합니다.
도서관 외관은 2층 처럼 보이지만 제가 보기엔 4층 이었을것 같았습니다.
 에페소은 현재 터키의 영토이지만 옛날에는 그리스와 로마의 영토였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유적들은 로마의 유적이 대부분 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원형극장 입니다.
25,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 입니다.
헬레니즘 시대에 세워진 원형극장은 현재 남아 있는것은 1-2세기 경의 유적 이라고 합니다.
무대에서 연극이나 연주를 하면 전 객석으로 울려 퍼졌다고 합니다.
오디오의 원형이 이곳이라고 합니다.
무대에서 객석에게 까지 울려 퍼지는 효과는 원형이 주는 에코의 효과도 있지만
인공적으로 화음을 조절해 주는 부분을 만들어 소리으 파동을 만들게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천연적이고 과학적인 음향효과를 지닌 원형극장이 그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라 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음향효과 뿐만 아니라 극장은 바다를 향해 지어 졌는데
공연을 보면서도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적군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20만 인구가 살던 때에 25,000명 정도가 이곳에 모였으면
도시 인구의 십분의 일이 이곳에 모였을 것입니다.
공연을 보는 여유속에서도 적을 향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기 위해
과학적으로 설계된 원형극장을 뒤로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발걸음에
역사의 흔적들이 묻어 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뙤약볕 아래서 땀방울의 노고가 헛되지 않기 위해
농사일에 매진합니다.
이번 터키 여행도 농사일 하듯 헛되지 않기 위해
뙤약볕 아래 에페소의 유적을 관람했습니다.
특히 그늘 한점 없는 에페소 유적지를 관람한것이 기억에 남을것 같습니다.
훗날 터키여행의 추억을 되살려 볼때 후회없는 여행이 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여행기에 심취해 보는 요즘 이랍니다.